"근포마을에 가면 땅굴이 있는데, 아세요?"
거제의 자연풍경을 주로 촬영하는 류정남 사진작가가 물었다. 보여주는 사진은 정말 땅굴이었다. 뭘까요? 일제 때 팠다는 말도 있는데 정확히 모르겠네요.
명사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저구마을을 지나면 근포마을이 나온다. 근포마을로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오면 '땅굴'이라고 쓴 조그만 팻말이 나왔다.
팻말따라 가다보니 해안선 끝에 진짜 땅굴 몇개가 있다. 요리조리 둘러본다.
굴은 가로 3미터에 높이 3미터 정도로 길이는 20미터 쯤 된다. 정사각형 모양이다. 형태가 완전한 땅굴 2개는 가운데가 서로 통하게 돼있다. H자 모양이다. 굴안에는 석간수가 똑똑 떨어지고, 바깥에 비해 아주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굴 하나는 파다가 멈춘 상태이고, 또 하나는 무너져있다.
툭 튀어나온 해안절벽을 따라 50미터쯤 돌아가면 먼저 본 굴보다 더 좁고 약 40미터쯤으로 긴 굴이 하나더 있다. 이 굴은 인근 수산양식장에서 창고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굴은 바닷물 수위보다 1미터 정도 높은 곳에, 낮은 산아래를 있다. 동굴은 약각 부서지기 쉬운 화강암을 깨내어서 만들었다. 굴앞 해안가에서 굴에서 나온 돌들이 널려있다.
굴을 확인한 후 좀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 남부면사무소에 전화했다. 근포이장님을 연결해 준다. 전화로 물어보려했는데 윤치원 이장님은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는 차를 몰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장님은 "마을 어르신들이 해방되기 얼마전에 일본군들이 군사용으로 팠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일제말기에 지역사람이 아니라 전라도 등 먼데 사람들을 시켜서 땅굴 5개를 팠는데 일본군의 무기창고 등으로 사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해방후에는 이 앞에 어장막이 있어서 굴에서 쉬기도 하고 밥도 해먹고 했고, 어릴 때는 앞바다에서 고기잡고 헤엄치고 놀다가 굴에서 쉬기도 했다"며 추억을 되살렸다.
땅굴 앞에는 자갈과 모래로 된 해변이 있는데, 최근에 면사무소에서 2미터 높이의 축대를 쌓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굴을 파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고생을 했을까. 오직 정과 망치로 정교하게 팠다는 땅굴...일본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문헌을 찾아보고 증언을 모아서 좀 더 확실하게 고증을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내용을 오늘신문 밴드에 올렸더니 많은 의견이 왔다. 밴친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된다. 집단지성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장용창 박사(오션연구소)는 좀 전문적이면서 긴 글을 남겼다.
"미군이 비행기로 오키나와에 폭탄을 퍼부어 일본이 오키나와에서 패전한 후 우리나라를 마지막 결전지로 삼은 결7호 작전 때 이런 동굴을 팠다고 하네요. 비행기 공습을 피하기 위해서요. 제주도의 평화박물관이 그런 굴 중 규모가 가장 큰 굴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도엔 45년 봄에 만든 이런 동굴진지가 7백 개 이상 있고요. 제주도의 박찬식 박사가 이에 대한 연구를 조금 했고 이에 대한 학술 세미나도 십년 전쯤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굴을 파기 위해 한국인들을 동원한 건 맞지만 임금도 준 것 같습니다."
김모씨는 "가덕도 가니까 거기도 저런 동굴 있던데, 거기서는 관광용으로 개발하는거 같더라"고 말했다.
원모씨는 "내가 아는 어느 노인분이 일당 2엔받고, 정과 망치만 들고 저기서 일했다고 합디다. 일본군이 온건 아니구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거제출신으로 근현대사 연구자인 전갑생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한달간의 미국 출장중인데도 긴 글을 남겼다.
"우선 현지 답사가 필요하겠습니다. 제주도 외 거제도, 가덕도 일대는 1943년 시기 진해사령부에서 부산 지역을 요새화 하면서 여러 동굴을 건설하는데 방호용과 잠수함 기지도 만듭니다. 주로 어뢰정인데요. 능포 양지암, 장목, 남부면 일부에는 방호용 동굴을 굴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가 있습니다. 장용창님께서 말씀하신 결7호 작전 지도와 부산 거제 가덕도 일대 별도 지도에는 포대 동굴 위치가 나옵니다."
또 "1944-45년 사이 거제도 일대 군사기지 추가 건설 관련해 일본군 문서가 남아 있죠. 그래서 현재 잔존하는지 여부를 파악한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습니다."
굴하나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이같은 내용들을 기초로 문헌조사와 현지확인조사 등을 거쳐 거제지역의 일제 땅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벌여야 겠다. 행정이 나서서 해도 되겠고 뜻있는 연구자가 해도 되겠고 함께 해도 무슨 상관이랴.
거제는 일제 강점기때 일제의 군사요충지였다. 동북아 열강들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일제가 결정적으로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게 된 러일전쟁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장목 송진포는 당시 일제 군항으로 러일전쟁승전기념탑이 있었다. 지심도는 대한해협과 부산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기지 였으며, 거대한 포대가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송진포와 쌍근 등을 비롯한 곳곳에도 러일전쟁 전후의 포대를 비롯한 군사기지 흔적이 산재해 있고, 사등면 가조도 앞에는 일제의 포사격 연습 타켓이었던 취도와, 그 기념비가 남아았
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유물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뜨거운 감자다. 감자를 먹기 전에 정확한 조사와 고증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