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 주말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깜깜한 밤, 독립군 하나 걸어간다. 어제는 하나뿐인 아들을 얼음땅에 묻고, 그저깨는 부모님을 흰 눈밭에 묻고, 그그저께는 사랑하는 아내를 가슴에 묻었다. 몇은 가족과 가문, 조선의 살길은 내선일체 뿐이라며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 또 몇은 조선의 독립은 강대국의 힘을 빌리는 외교밖에 없다며 미국으로 소련으로 떠났다.
지난 1월 16일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가 숨진 날이다. 경북 안동출신으로 20세에 의열단에 가입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3년형을 받고 투옥됐다. 이때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로 택했다고 전해진다. 출옥후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했다.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됐다. 그의 시는 그의 삶을 닮아 강렬했다. 양보가 없었다. 43년 6월에 피검돼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일제에 머리를 숙일수 없다며 꼿꼿한 자세로 세수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이육사의 절정 부분). 강철로된 무지개는 육사 사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하다.
일제강점기 이육사 시인이 있었다면 친일군사독재시대에는 김남주시인(1946-1994)이 서늘하게 자리잡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밥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감옥을 전전, 병마와 싸우다 혁명과 투쟁의 시들을 남기고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그의 삶이 이육사를 닮았다.
'강물에 파문하나 내고 가라않고 말 돌멩이 하나'가 저녁햇살에 반짝 빛난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역사에 어둠을 밀어내는 반딧불 하나, 묵직한 지성, 샛별같은 시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시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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