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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교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거제강연
김누리 교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거제강연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24.11.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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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거제지회(이하 거제 참학)는 ‘2024 대중강좌’를 지난 11월 22일 거제도서관 3층 대강좌실에서 진행했다. 강연자로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의 저자 김누리 교수를 초청하였다. 책의 제목이자, 이번 행사의 주제인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는 그동안 참학이 소리쳐 외쳐왔던 말이기도 하다. 거제도서관 3층 대강좌실 자리가 사십여 명의 참가자로 꽉 찼다. 예정된 강연 1시간 30분이 지나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40여 분을 더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열정적인 강의도 강의지만, 강의를 듣고, 질문을 이어가는 참석자들의 열의가 뜨거웠다.

김누리 교수는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본 가을 풍경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왜 우리는 이처럼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대한민국이 불행한 근거를 나타내는 통계자료와 연구자료를 수도 없이 나열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 ‘불평등’을 가장 사랑하며, 타인에 대한 관용도가 낮으며, 서로 간에 갈등이 가장 심하며, 가족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회원국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조금 늘리려고 하니, ‘전교 1등이 아닌 실력 없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냐’고 협박하는 의사들이 있는 나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미성숙한 엘리트들이 특권의식과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사람들 위에서 함부로 군림하는 나라. 정작 부끄러워할 일도 없는 선하기만 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나라. 양육비, 교육비, 집값 때문에 아이 낳기를 포기하며 ‘집단 자살 사회’를 만들어낸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충성하는 황국 신민을 기르는 것이, 군사 독재 시절에는 반공 투사와 산업 전사를 기르는 것이, 민주 정부 이후에는 기업의 인적 자원을 만들기 위한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비록 목표는 다르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사람을 우열로 나누기 위해 경쟁 교육이 전부였다. 우리는 경쟁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가 불행한 근본 원인이 바로 이러한 경쟁 교육 때문이라 말한다.

경쟁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바로 ‘능력주의’와 ‘공정’이다. 김누리 교수는 공정, 능력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이 세 가지를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 칭했다. 우리는 대입 시험의 결과물을 기계가 채점하는 유일한 나라다. 공정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공정한 객관식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변변치 않은 능력주의에 갇혀 우월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만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 시장은 야만의 트라이앵글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괴물로 성장했다. 정작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는 사교육이라는 괴물에 짓눌려 ‘교육 공동체’가 아니라, ‘고통 공동체’가 되었다.

교육 ‘Education’은 라틴어의 ‘e’ (out)와 ‘ducere’ (put)에서 유래한 합성어다. 이는 ‘밖으로 이끌어내다’라는 뜻으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장점과 개성, 재능과 잠재력을 끄집어내고 이끌어내서 잘 발현시킨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재능과 잠재력을 끌어내는 진짜 교육이 아니라, 죽은 지식을 쑤셔넣는 교육만을 하고 있다. 잘못된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까지 삐뚤어지고 왜곡된 교육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고통 공동체’이다. 교육으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그 출발이다. 그렇다. 생각이 바뀌면 된다. 생각이 바뀌어 작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교육을, 존엄한 인간을 위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고통 공동체’가 아니라, 따뜻하고 찬란한 ‘교육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의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강연이 끝나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 의사를 만들기 위해 안달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의사로 키워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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