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어는 산골에서 폭설주의보에 갖혀 며칠을 뒹굴고 싶어진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끊어진 오막살이 집. '세상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고', 원시의 흰 눈에 갖혀 끝내 오지않을 나타샤를 그리워하자. 세상은 설국인데 묵묵한 당나귀도 마저도 희다. 1938년 세상과 사랑에게도 상처받은 백석의 마음이다.
양희은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 낮게 흐르거나 '닥터지바고'의 눈내리는 밤을 무성으로 보는 풍경이다. 끝내 오를 수 없는 산, 건널 수 없는 강, 심연의 거리를 두고 홀로 소주를 마시는 설국의 남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때로는 한 문장으로 인하여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도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사랑도 세상도 버리지 못하고 응앙응앙 울고 있는 식민지 가난한 시인이다.
*출출이는 뱁새, 마가리는 오막살이의 평안지방 사투리, 고조곤히는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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