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민예총 거제지부(거제민예총)는 청소년 문화예술 공모전 <제5회 나도 예술가>의 시상식을 지난 10월 26일에 진행했다. 거제민예총이 주관하는 <나도 예술가>는 거제시 문화예술부문 지원금 사업「Art for you」의 일환으로 거제시문화예술재단이 주최하고, 거제시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사업이다.
이번 <제5회 나도 예술가>는 산문(소설, 수필), 운문(시), 그림, 사진 4개 부문으로 작품을 공모하였다. 거제민예총 담당자는 이번 공모전 주제인 ‘우리 동네, 내 고장 거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동네라는 말은 참 따뜻해서 좋습니다. 동네에는 자라며 듣고, 배우고, 먹고, 뛰어놀았던 기억이 함께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 ’거제‘에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큰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닮긴 거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사는 동네를 좀 다르게, 또 더 자세하게 바라보는 것을 어떨까요?’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동네 거제’를 소설과 수필로, 그림과 사진으로 그리고 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평이다.
작품의 심사는 각 분야 심사위원들이 전체 응모작품을 1차 비대면 심사를 거쳐 2차 집중심사를 진행하였다. 출품작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인 대상은 연초중 3학년 옥민지 학생의 수필 ‘마을의 햇살 아래에서’가 차지했다. 각 부문별 최우수작품상은 운문 부문은 연초중 2학년 김은하 학생의 ‘바람의 언덕’, 산문 부문은 고현중 2학년 송유근 학생의 ‘새로운 시작, 거제’, 그림 부문은 고현중 2학년 박주 학생의 ‘우리 마을 거제’, 마지막 사진 부문은 둔덕중 3학년 박주연 학생의 ‘8월의 친구들과의 추억’이 차지했다. 대상은 ‘거제시 교육장 상’과 함께 부상으로 문화상품권 30만 원을, 각 부문별 최우수작품상은 역시 ‘거제시 교육장 상’과 함께 부상으로 문화상품권 10만 원을 시상했다. 또한 우수 작품들은 거제지역 문예지인 <예술섬>에 수록하여 발간된다.
2020년에 처음 실시했던 <나도 예술가>는 ‘코로나와 환경’을 주제로 작품을 공모하여 거제고 최정아 학생의 소설 <폴라 바이러스>에게 대상을 수여했다. 2021년에는 ‘노동과 일, 아르바이트와 미래 직업’에 대한 주제로 연초고 안준우 학생의 사진 <우리 형의 운동화>가, 2022년에는 ‘나와 인터넷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거제제일고 이해름 학생의 시 ‘이카루스의 날개’가, 2023년에는 거제중 서예린 학생의 그림이 대상을 차지했다. 올해 대상을 받은 옥민지 학생의 수필과 몇몇 우수 작품을 소개한다.
‘제5회 나도예술가’ 대상 <마을의 햇살 아래에서> -연초중 옥민지
나는 거제의 작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산다. 증조할머니도 할머니도 우리 엄마도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빠서 할머니 손에서 거의 키워졌는데, 내가 9살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우리집은 마을회관 바로 앞이어서 나는 자주 마을회관에 놀러 갔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다. 마을회관까지 언덕이 있어서 오빠가 항상 아침 일찍 학교 가기 전에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마을회관까지 데려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오빠는 고작 12살이었는데 참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오빠는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어주었고, 나는 할머니의 요강을 치워주었다. 할머니는 화장실 가기가 어려워 요강에 볼 일을 보셨다.
그날은 왜인지 모르게 달랐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난 다음 날이었는데, 평소와 같이 반 팔 반바지를 입고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겨울바람과 맞먹는 바람때문에 문을 닫고, 옷장에 꾸깃꾸깃 박아놓은 후드티 한 장을 꺼내 입고선 학교로 갔다. 아침 시간은 항상 선생님과 함께 동요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그날은 ‘곰 세 마리’를 불렀다.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나랑 친구 지현이는 큰 소리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선생님은 우리의 목소리가 맑고 크다며 칭찬해 주셨고 사탕을 하나씩 우리 손에 쥐여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내 자리는 창가 옆자리였는데 선생님의 수업은 재미없었기에 창가를 구경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창가만 바라봤다. 학교엔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단풍나무가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등으로 색이 변해있었다. 마치 빨주노초 무지개 같았다. ‘가을이 새삼스레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창가만 구경하다 어느새 학교는 마쳐 있었고,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잽싸게 놔두고 마을회관으로 달려갔다.
회관엔 우리 할머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등 많이 계셨다. 할머니들은 보자기 같은 것을 깔아놓고 화투를 치고 계셨다. 그때 나는 화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보자기 위 많이 모여있는 동전 덩어리들이 탐나서 할머니한테 나도 쳐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어린애들은 치면 안 돼”라고 얘기하셨다. 할머니들이 화투 삼매경에 빠지자 나는 심심해져서 할머니의 주위를 끌고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제가 오늘 배운 거 보여드릴게요!”
나는 소파 위로 올라가서 오늘 배운 곰 세 마리를 불렀다. 할머니들은 박수를 쳐주시고, 할아버지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나서 4시쯤 되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 중 몇 분은 집을 가셨고, 나와 우리 할머니는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9살이었던 나의 힘으로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지나자 오빠가 회관에 왔다. 오빠와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갔다. 나는 오빠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아침에 차리고 간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고 침대에 누우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상쾌했다. 왜냐하면 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토요일은 할머니와 함께 마을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날이다. 아침 9시쯤에 할머니와 나와 오빠는 물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와 마을 벽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우리집 벽에는 단풍나무의 단풍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을. 할머니는 회관 앞집 벽에 을씨년스러운 마녀의 집을. 오빠는 은행나무 앞에 어린 왕자를 그렸다. 너무 재밌었다. 우리 마을은 우리 셋의 손길이 안 닿은 집이 없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가끔씩 아저씨들이 나와서 화를 내고 가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그런 소리 듣지 말라며 우리의 귀를 막아주셨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물드는 노을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때 나는 휴대폰이 없었기에 이 노을을 기억하고자 눈을 부릅뜨고 노을을 봤다. 9살의 나는 생각했다. 이 추억을 이 노을을 이 마을을 죽어서도 기억하겠다고. 그 순간 오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민지야! 할머니 집에 모셔다드리고 다시 올 테니까 기다려!“
나는 오빠의 말에 알겠다는 표시로 끄덕거리고 오빠를 기다렸다. 5분쯤 지나자 오빠가 왔다. 오빠는 마을의 아지트를 찾았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겼다는 게 너무 설레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긴장되어서 오빠에게 폭풍 질문을 했다.
“오빠 어딘데? 어디에 있는데?”
“침대 있어? 소파는? 티비는?”
“고양이 있어? 있으면 좋겠다…”
“오빠 어딘데? 왜 이렇게 많이 걸어!”
10분쯤 걷자 나는 다리가 아파 오빠에게 짜증도 내고 찡찡댔다. 오빠는 거의 다 왔다며 조금만 참으라고 짜증 아닌 짜증을 내게 냈다. 그러고 5분쯤 걸었을까? 오빠가 나에게 다 왔다고 하였다. 너무너무 실망스러웠다! 왜냐하면 티비도, 소파도, 고양이도 아무것도 없고, 있는 거라곤 엄청 큰 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 이게 뭐야…. 이런 덴 아저씨들만 있을 거 같아!’라며 투덜댔다. 오빠는 내게 주변 경치를 보라고 했다. 나는 오빠의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큰 돌에 앉아 눈을 3초간 꾹 감고 떴다. 눈을 뜨니 마을이 눈에 다 들어왔다. 우리를 비추는 지고 있는 태양이 손을 뻗으면 곧장 만질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보였다. 지고 있는 태양 아래를 쳐다보니 우리집이 훤히 보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을 보니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단풍나무들이 있었다. 마치 유명한 화가의 그림 한 장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예뻤다. 입에선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빠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때? 멋지지?’ 나는 이렇게 멋진 것은 처음 본다면서 ‘응!’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나와 오빠는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9살 때부터 16살 지금까지 나는 공부에 지쳐 힘이 들거나, 부모님과 싸웠을 때 혹은 정말 울고 싶을 때마다 아지트로 갔다. 지금은 오빠가 일하러 사천으로 떠나서 비록 아지트에 혼자 가야 하지만 괜찮다. 봄엔 벚꽃 나무들이 만개해서 이쁘고, 여름엔 초록으로 뒤덮인 숲들이 웅장하고, 가을엔 알록달록 새로운 머리를 한 나무들이 아름답다! 아지트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가면 할머니와 같이 그렸던 벽들이 나의 추억들을 새록새록 생생하게 떠올려준다. 그림을 그렸던 9살이 지나고 내가 10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셨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할머니와 그림 그리는 게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는 게 정말 슬펐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을 땐 아지트로 가서 ‘할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그러면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너처럼 아름다운 아이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서 참 고맙다.”
“너는 밤하늘의 별보다, 뜨거운 태양보다 밝으니 기죽지 말고 살아라.”
할머니가 내게 자주 해주시던 말이다. 할머니는 내게 정말 예쁜 말만 해주셨다. 열 가지의 말이 있다면 할머니는 열 가지 전부 다 내게 예쁜 말만 해주셨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곱씹고 곱씹어서 마음속 한 켠에 묻어두었다. 그 말은 곧 꽃으로 피어서 나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가끔씩 친구들이 내게 ‘너만 혼자 동떨어진 동네에 사는데 안 심심해?’라고 묻는다. 나는 그 말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하나도 안 심심해!”
집마다 예쁜 그림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가장 별이 잘 보이는 동네인데 뭔들 심심하겠냐? 비록 시내의 풍경도 아름답겠지만, 우리 마을의 추억을 또는 풍경을 주진 못할거라고. 오늘도 난 아지트로 가서 붉은 노을을 보았다. 그러고선 외쳤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16살인 나는 아직도 9살이었던 나를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간다. 할머니가 얘기해주었던 예쁜 말들이 거름이 되어 나는 누구보다 밝은 아이로 크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 마을은 어느 마을보다도 아름답다. 이 마을에 사는 나도 계속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나의 꿈도 내가 희망하는 삶도.
운문 부문 최우수작품상 <바람의 언덕> -연초중 김은하
바람의 언덕에 가면
마음 속이 고요해진다
기뻤던 마음도 바람에 스쳐 가
슬펐던 마음도 바람에 스쳐 가
화났던 마음도 바람에 스쳐 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감정이 되어버린다
고요하다